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 / 이명준 - 조직이 ‘왜’가 아니라 ‘어떻게’로 만든다.
주사파? PD? NL? 그리고 이석기. 도대체 무엇일까? 그래서 이 책을 펼쳤다.
이야기를 학교생활 중심으로 전개한다. 그래서 더 잘 읽힌다. 옛날 생각도 나고 말야. 추구하는 이념 설명을 간단하게 해서 마음에 든다. 자세한 이념 설명보다는 그걸 신앙으로 삼을 수 있었던 배경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주체사상의 좋은 이야기들은 결국에는 수령론을 목적으로 한 경전들일 뿐이다. 지금까지의 좋아 보이는 내용은 모두 수령론을 통해 일인 독재의 전체주의 사회를 지탱해나가는 받침대와 지주가 된다. - p74
애초에 물질 중심에서 사람 중심의 세계관으로 옮겨갈 때도 특별한 논리적 과정 없이 뛰어넘었는데, 수령론에 들어서면 주체사상에서 내세운 전재마저도 뛰어넘어야 한다. 인민이 주체가 되는 사회라는데 왜 자주적 인간이 남의 지도를 받으며 집단주의로 살아야 비로소 주체가 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 p208
허술하기 짝이 없는 주체사상과 수령론. 어떻게 똑똑한 그들이 모든 전재를 뛰어넘고 신도가 될 수 있었던 걸까? 정리해서 글로 남기려니 정리정돈이 안 된다. 힌트는 몇 개 얻었지만 정리하기에는 아직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재료를 복잡하게 엮어서 만든 작품이라서 좀 더 공부가 필요하다.
그래서 깔끔한 정리는 불가능. 인상적인 것들에 대한 느낌만 남긴다.
문제는 반증의 부재다. 지식수준이 질적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반증을 통한 변증법적 공부가 이뤄져야 하는데, 같은 관점의 비슷한 내용만 계속 반복해서 학습한다. 언제나 과학적 사고를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과학적 사고와는 거리가 멀다. 반증이 없는 학습이란 종국에는 신앙이 될 수밖에 없다. - p31
스티브 잡스도 따라오지 못할 거대한 현실 왜곡장. 여유 없는 바쁜 일정이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학생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좋은 학점을 받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OT, 5.18, 한총련 출범식, 농활, 8.15 범민족대회, 학생회, … 정말 많은 행사가 있다. 위에서 지침도 수시로 내려오고 대중사업도 해야 하고 게다가 사상에 대해 공부도 해야 한다. 정말 이런 것들을 다 소화하며 반증을 통한 변증법적 공부를 할 수 있었을까? 결국에는 ’중앙이 결정하고 우리는 한다‘로 가게 되는 것 아닐까?
진보진영에서 내부 문제가 외부로 터질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가 ‘왜 정해진 절차를 밟지 않고 외부로 발설하느냐’는 식의 적반하장이다. … 무수히 많은 단계가가 있으며, 그 과정에서 반드시 커트를 당한다. 내부에서 문제 제기가 정상적으로 이뤄진다면 무엇하러 외부에 발설하겠는가. - p154
NL이라고 다른 조직과 아주 다르지 않다. 조직이란 다 비슷하구나. 내부에서 문제 제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중요한 신호인데, 발설자에게 책임을 지우려고만 한다. 문제 제기에 대한 아무런 피드백이 없는 조직에서는 두 가지 반응만이 존재한다. 리눅스형 피드백에 지쳐서 체념하게 되거나 중간을 거치지 않고 바로 위에 얘기하게 된다.
조직의 생리가 잘 나타나서 NL에 관심이 없더라도 추천하고 싶다.
- 역사 발전이란 냉정하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저절로 극복되는 경우는 없다. 지금 외면하고 넘어가는 것들은 미래에 반드시 후과로 나타난다. 2012년 봄 통합진보당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우리들의 동조와 방조, 그리고 침묵이 낳은 괴물이다. - p8
- 내부비판에 있어 가장 적절한 시기는 언제나 ‘지금’이다 - p9
- 투쟁하기 위한 차원에서 등록금 문제에 접근하기 때문에, 매년 등록금 투쟁이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과의 협상 노하우나 관련 제도가 축적되지 않는다. 애초부터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부분이기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 p25
- 팩트를 지적하며 비판하는 이들이 졸지에 색깔론자나 매카시즘 선동자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당장 언론이나 인터넷 공간을 봐도 이런 논리는 굉장히 잘 먹힌다. 진보진영 내부에서 그동안 주사파에 대한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었던 이유 중에 하나다. - p44
- 시스템이 정교해지고 규모가 커질수록 선택의 자유는 사라지고, 사색과 성찰의 여유는 줄어들며, 주체적이어야 할 개인은 도구가 되어간다. 자유로운 인간들이 모여 만들어가는 시스템의 역설이다. - p56
- 똑똑한 척하지 말고, 학우들 중심으로 바보처럼 살다 보면, 언젠가는 학우들이 우리를 반드시 알아준다는 내용이다. 이게 NL이 요구하는 인간형이자 말 많은 ‘품성론’의 핵심이다. - p68
- 운동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문화가 있다. 후배에게 책을 사주면 꼭 맨 앞표지 뒷면에 몇 마디의 좋은 문구와 함께 자신의 이름과 날짜를 써서 건네준다. - p78
- 대학생이면 성인이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정치토론을 할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대학생들 사이에서 초기 1~2년 차의 간극은 생각보다 크다. - p87
- 내재적 접근법으로만 사회를 이해하게 되면 결국 그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의 시각으로 볼 수밖에 없고, 그들의 모든 행위가 정당화된다. … 반면에 상식에 근거한 보편적 잣대는 사라진다. 구 민주노동당의 어느 인사는 3대 세습을 옹호하는 와중에 ‘인권은 가장 낮은 수준의 진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 p107
- 북한에 대한 무비판적 태도를 지적하는 외부의 비판에 곤혹스러워하던 NL에 ‘내재적 접근법’은 도깨비 방망이 같은 역할을 했다. 뭐든지 비해갈 수 있는 논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 p107
-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는 모두가 자신의 삶을 운동의 대의에 바치겠노라고 다짐한다. 그렇지만 분노와 열정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최초에 운동을 시작했던 그 자세와 가치들은 어느샌가 사라져버린다. 유통기한이 끝나고 남게 되는 것은 그것들을 담아두었던 케이스뿐이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고 담아두던 도구에 불과했던 케이스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판단하려 한다. 사고의 화석화는 이렇게 이뤄진다. - p110
- 늘 다수는 소수에게 단결을 강요하며, 소수는 다수에게 ‘너’와 ‘내’가 얼마나 다른지 열변을 토한다. 참여정부 시절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차이가 샛강이라면,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차이는 한강’이라던 민주노동당의 주장에는 그런 맥락이 있다. - p117
-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말이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돌아보면 아니다. 보수나 진보나 조직과 권력의 생리는 똑같다. … 내부 혁신을 못 해서 망하고, 획일화되면서 망하고, 독재하면서 망한다. - p121
- 공개적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다양한 견해가 없는 곳에서는 언제나 가장 극단적인 수준의 해석이 힘을 얻게 마련이다. … 괴물처럼 보이는 사회 현상의 밑바탕에는 괴물이 만들어지게끔 하는 사회적 토대가 존재한다. - p131
- 약자가 강자에게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훈련이 아니다. 그것은 처지에 따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강자가 되었을 때의 올바른 태도를 기르는 것이 민주주의 훈련이다. - p166
- 진보진영의 비NL 운동가들이 주사파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토론과 민주주의가 부재한 내부 문화가 있기에 어제까지 노동자를 위했던 조직이 내일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 - p167
- 주사파와 NL이 80년대 들어 반미와 통일을 외치기 전까지는 우리 사회에는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존재하지 않았다. 언급조차 금기시되는 주제였으며, 시민들에게는 오직 친미와 반공, 반북의 사고만이 허용되었다. 금기가 있는 사회는 어디에서나 그렇지만, 그에 대한 반작용이 있기 마련이고, 결국 가장 극단적인 해석이 힘을 얻게 된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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