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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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이 독자 스스로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어떻게 해서 이처럼 막대한 힘을 얻게 되었는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 - 유발 하라리

빅히스토리가 새롭게 각광받는 것은 문제의식이 새롭기 때문이다. 증거가 충분할 리 없다. 거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그에 대한 과학적인 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핵심이다. 열린 마음으로 인간이라는 종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따라가보자. - 조현욱(옮긴이)

증거 제시요. 말마다 이렇게 꼬투리를 잡으면 시작도 못 할 거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생각하는 프레임워크를 제시하는 느낌이었다. 재미있다.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 중 하나는 이들 종을 단일 계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컨대 에르가스터가 에렉투스를 낳고 에렉투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낳고 네안데르탈인이 진화해 우리 종이 되었다는 식이다. 이런 직선 모델은 오해를 일으킨다. 어느 시기를 보든 당시 지구에 살고 있던 인류는 한 종밖에 없었으며, 모든 오래된 종들은 우리의 오래된 선조들이라는 오해 말이다.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마주친 순간이 있었을 것이며 인종청소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흥미로웠다.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흔히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단일 계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이 진화해 사피엔스가 됐으며 자연스레 전환이 일어났을 거라 생각했다.

인지혁명에 뒤이어 뒷담화이론이 등장한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더 크고 안정된 무리를 형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뒷담화에도 한계가 있었다. 과학적 연구 결과 뒷담화로 결속할 수 있는 집단의 ‘자연적’ 규모는 약 150명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150명이 넘는 사람들과 친밀하게 알고 지내며 효과적으로 뒷담화를 나눌 수 있는 보통 사람은 거의 없다. [.]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해서 이 결정적 임계치를 넘어 마침내 수십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 수억 명을 지배하는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아마도 허구의 등장에 있었을 것이다.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공통의 신화를 믿으면 성공적 협력이 가능하다.

어떻게 사피엔스는 150명이 넘는 사람이 결속할 수 있을까? 한 번도 궁금한 적이 없던 주제다. 150명이 넘는 사람이 결속하기 어렵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영원한 생명도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번 상상해보자. 모든 질병을 고치는 치료법, 노화를 효과적으로 막아주는 요법, 젊음을 영원히 유지하는 회춘요법 등을 찾아냈다고 하자. 그 직접적인 결과는 분노와 불안이 사상 유례없이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현상일 것이다. 새로운 기적의 요법을 받을 돈이 없는 사람 — 대다수의 사람 — 들은 격렬한 분노에 휩싸일 것이다. 역사를 통틀어 가난하고 압박받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안해온 것은 적어도 죽음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는 믿음이었다. 부자나 권력자도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은 죽어야 하는데 부자는 영원히 젊고 아름답게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니. 생각 못 해봤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찾아오는 죽음마저 빈부의 격차에 따라 달라진다니 역사상 유례없는 불평등이 찾아올 수 있다.

어떻게 우리 호모 속 사피엔스 종은 지구에 사는 생물 중에 가장 강력한 존재가 되었을까? 직립 보행과 도구 사용. 사회를 이루는 능력 등. 그럴듯하지만 정성스런 근거를 설명하지 않는 이유만 접해왔다. 의심하진 않았다. 증거를 제시하는 게 불가능하단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기록을 남기기 이전 자료가 필요한데, 과학도 한계가 있어 보였다. 사라져버린 증거를 복구할 수는 없으니깐. 하지만 논리적인 전개로 추측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호모 속 사피엔스 종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다.

기억에 남는 문장.

  • 전설, 신화, 신, 종교는 인지혁명과 함께 처음 등장했다. 이전의 많은 동물과 인간 종이 “조심해! 사자야!”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인지혁명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자는 우리 종족의 수호령이다.”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 하지만 개인과 가족 차원에서 차이를 찾으려 하는 것은 실수다. 일대일, 십대십으로 보면 우리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침팬지와 비슷하다. 심각한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개체수 150명이라는 임계치를 초과할 때부터다. 숫자가 1천~2천 명이 되면, 차이는 엄청나게 벌어진다. 만일 수천 마리의 침팬지를 텐안먼 광장이나 월스트리트, 바티칸, 국회의사당에 몰아넣으려 한다면 그 결과는 아수라장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장소에 정기적으로 수천 명씩 모인다.
  • 오늘날 우리의 마음이 수렵채집인 시대의 것이라면, 우리의 부엌은 고대 농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 그게 가능해지자마자 지겹고 위험하고 종종 스파르타처럼 가혹했던 수렵채집인의 삶을 기꺼이 포기하고 농부의 즐겁고 만족스러운 삶을 즐기기 위해 정착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환상이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더욱 총명해졌다는 증거는 없다. 수렵채집인들은 농업혁명 훨씬 이전부터 자연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사냥하는 동물과 채집하는 식물을 잘 알고 있어야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농업혁명은 안락한 새 시대를 열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농부들은 대체로 수렵채집인들보다 더욱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았다. 수렵채집인들은 그보다 더 활기차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고 기아와 질병의 위험이 적었다.
  • 이들의 진화적 ‘성공’은 무의미하다. 아마도 좁은 상자 안에 갇혀서 살을 찌우다가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가 되어 짧은 삶을 마감하는 송아지보다는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한 야생 코뿔소가 더 만족해할 것이다. 만족한 코뿔소는 자신이 자기 종족의 마지막 개체라는 데 아무 불만이 없다.
  • 활용하려면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고 속삭인다.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향해 스스로를 활짝 열어야 하고, 다양한 관계들을 두루 맛보아야 하며, 평소와 다른 요리를 시식해봐야 하고, 다른 종류의 음악을 감상하는 법을 배우라고 말이다. 이 모두를 실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반복되는 일상과 친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먼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 고대 이집트의 부자는 관계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바빌론으로 여행을 간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대신 아내가 항상 원하던 호화로운 무덤을 건설했을 것이다.
  • 변호사들은 이를 ‘법적인 허구’라 부른다. 이것은 손으로 가리킬 수 없다. 물리적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적 실체로서는 존재한다. 당신이나 나와 마찬가지로 이 회사는 그것이 운영되는 국가의 법에 제약된다. 은행계좌를 열고 자산을 소유할 수 있다. 세금을 내고, 소송의 대상이 되며, 심지어 회사를 소유하거나 거기서 일하는 사람과 별개로 기소당할 수도 있다. 푸조는 ‘유한(책임)회사’라는 특별한 법적 허구의 산물이다. 이런 회사의 이면에는 인류의 가장 독창적인 발명으로 꼽히는 개념이 존재한다.
  • 농업혁명의 핵심이 이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 하지만 이런 진화적 계산법에 왜 개인이 신경을 써야 하는가?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호모 사피엔스 DNA 복사본의 개수를 늘리기 위해 삶의 질을 포기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 거래에 동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농업혁명은 덫이었다.
  • 인지혁명 이후, 사피엔스는 이중의 실재 속에서 살게 되었다. 한쪽에는 강, 나무, 사자라는 객관적 실재가 있다. 다른 한쪽에는 신, 국가, 법인이라는 가상의 실재가 존재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상의 실재는 점점 더 강력해졌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강과 나무와 사자의 생존이 미국이나 구글 같은 가상의 실재들의 자비에 좌우될 지경이다.
  • 고대 이집트의 엘리트처럼, 대부분의 문화에 속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피라미드 건설에 삶을 바쳤다. 문화에 따라 피라미드의 이름과 형태와 크기가 달라질 뿐이다. 피라미드는 수영장과 늘 푸른 잔디밭이 딸린 교외의 작은 집일 수도 있고, 전망이 끝내주는 고급 맨션 꼭대기층일 수도 있다. 애초에 우리로 하여금 그 피라미드를 욕망하도록 만든 신화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은 드물다.
  • 분명한 사실은, 문서를 점토에 새기는 것만으로는 효율적이고 정확하며 편리한 데이터 처리를 보장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목록 같은 조직화 방법, 복사기 같은 복제수단, 컴퓨터 알고리즘 같은 빠르고 정확한 검색법 그리고 이런 도구들의 사용법을 아는 박식한 체하는(하지만 바라건대 명랑한) 사서가 필요하다. 이런 방법들을 발명하는 것은 문자를 발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일로 드러났다
  • 범주는 예컨대 귀족과 평민과 노예, 백인과 흑인, 고대 로마의 귀족과 평민, 부자와 가난한 자 등이었다. 이런 범주는 어떤 사람을 법적이나 정치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더 우월하게 만듦으로써 수백만 명의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조율했다. 위계질서는 중요한 기능을 하나 수행한다. 완전히 모르는 사람들끼리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도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 신화와 허구는 사람들을 거의 출생 직후부터 길들여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특정한 기준에 맞게 처신하며, 특정한 것을 원하고, 특정한 규칙을 준수하도록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수백만 명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해주는 인공적 본능을 창조했다. 이런 인공적 본능의 네트워크가 바로 ‘문화’다.
  • 인지 부조화는 흔히 인간 정신의 실패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핵심자산이다. 만일 사람들에게 모순되는 신념과 가치를 품을 능력이 없었다면, 인간의 문화 자체를 건설하고 유지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예컨대 기독교인인 당신이 근처 모스크에 참배하러 가는 무슬림을 정말로 이해하고 싶다면, 모든 무슬림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순수한 가치들이 무엇인지 찾아볼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무슬림 문화에서 가장 극심한 딜레마의 현장을 찾아봐야 한다. 규칙이 서로 충돌하고 규범이 서로 난투를 벌이는 지점 말이다. 무슬림들이 두 가지 지상명제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지점이야말로 당신이 그들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다.
  • 게임이론은 다수가 참여하는 게임에서 어떻게 모두에게 해가 되는 시각과 행동 패턴이 뿌리를 내리고 퍼져나가는지를 설명해준다. 유명한 예가 군비 경쟁이다
  • 이 시스템 내에서 사람들은 ‘신용’이라 불리는 특별한 종류의 돈이 상상 속의 재화 — 현재 존재하지 않는 재화 — 를 대표하게 하는 데 동의했다. 신용은 미래를 비용으로 삼아 현재를 건설할 수 있게 해준다. 신용은 우리의 미래 자원이 현재 자원보다 훨씬 더 풍부할 것이라는 가정을 토대로 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미래의 수입을 이용해서 현재에 무엇을 건설할 수 있다면, 새롭고 놀라운 기회가 수없이 많이 열린다.
  • 경제용어로 말하자면, 사람들은 부의 총량이 더 줄지는 않더라도 한정되어 있다고 믿었다. [.] 영국 왕이 자신을 부유하게 만드는 방법은 프랑스 왕의 것을 훔치는 것밖에 없었다. 파이를 자르는 방법은 수없이 많지만, 어느 방법도 파이를 더 크게 만들지는 못한다. 수많은 문화권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죄악이라고 결론 내린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예수가 말했듯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려우니라”(마태오 복음 19 : 24)였다.
  • 하지만 우리는 더 행복해졌는가? 지난 5세기 동안 인류가 쌓아온 부는 우리에게 새로운 종류의 만족을 주었는가? 무한한 에너지원의 발견은 우리 앞에 무한한 행복의 창고를 열어주었는가? 좀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인지혁명 이래 험난했던 7만 년의 세월은 세상을 더욱 살기 좋은 것으로 만들었는가? 바람 없는 달 표면에 지워지지 않을 발자국을 남겼던 닐 암스트롱은 3만 년 전 쇼베 동굴에 손자국을 남겼던 이름 모를 수렵채집인보다 더 행복했을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농업과 도시, 글쓰기와 화폐 제도, 제국과 과학,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 하지만 새로운 요법을 받을 경제적 여유가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도 그렇게 희열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걱정해야 할 일이 많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요법이 생명과 젊음을 연장해줄 수는 있지만, 시체를 되살리지는 못한다. 나와 내 사랑하는 이가 영원히 살 수는 있지만 트럭에 치이거나 테러리스트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만 그렇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영원히 살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사람들은 심지어 아주 조그만 위험을 무릅쓰는 것도 몹시 싫어하게 될 것이며, 배우자나 자녀, 친한 친구를 잃는 데 따르는 고통을 견딜 수 없게 될 것이다.
  • 헉슬리의 미래상은 조지 오웰의 《1984》 보다 훨씬 더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대부분의 독자는 헉슬리가 그려내는 세상을 괴물 같다고 느낀다. 하지만 왜 그런지 설명하기는 힘들다. 모든 사람이 항상 행복하다는데, 거기에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 새로운 피조물이나 장기를 개발한 회사는 그 DNA 염기서열에 특허등록을 할 수 있을까? 특정한 닭을 소유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특정한 종 전체도 소유할 수 있을까?
  • 강화에 있는 시대가 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모든 인간에게 강화된 능력을 부여받을 자격이 있을까, 아니면 초인간 엘리트 족속이 새로 생겨날까? 현대는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시대이며,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역사상 유례없는 불평등을 창조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사피엔스: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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