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스 루트, MBC 스페셜 (MBC, 2008)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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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i

예를 들어볼까요. 미국에 이민을 간 이탈리아 사람들이 고향에 쓴 편지에서 그리워한 맛은 파스타가 아니라 그 위에 얹은 바질이었습니다.

모든 재료와 향신료는 음식에 문화와 개성을 주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음식의 특징과 개성을 느낍니다.

다시 말해 향신료는 음식 문화를 나타내는 거죠. - 인터뷰, 마씨모 몬타라니 교수

스파이스(spice), 즉 향신료(香辛料) 이야기. 뭔가 역사도 살짝 훑고 다른 나라 문화도 엿볼 수 있고 입에 침 고이고 뭐 그래서 이런 음식 다큐가 재미있다. 딱 향신료에 초점을 맞춘 다큐.

향신료 자체가 100% 식물성을 의미한다. 이거 몰랐네. 그럼 여기는 동물성 뭐 이런 거 없는 거잖아. 그런 건 향신료로 취급도 안 해주니깐. 꽃, 열매, 뿌리 등 식물의 온몸에서 얻는다. 즉, 식물을 신나게 털자가 되겠다.

역사 얘기가 빠질 수가 없지. 향신료 역사를 보니 도자기 역사와 많이 겹친다. 어쩔 수 없는 게, 향신료는 도자기와 더불어 대항해 시대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예전에 본 ’도자기, KBS 스페셜’이 더 자세하고 흥미진진하게 다뤄줘서 이 다큐에서는 별로 재미없었다.

콜럼버스가 향신료에 영향을 많이 줬구나. 역시 선빵을 찍으면 이리저리 많이 따라온다. 콜럼버스가 고추를 전파했다는 건 이 다큐를 통해 처음 알았다. 신대륙에 도착해서 콜럼버스가 후추를 찾고 난리였는데, 대신 들고 온 게 바로 고추. 바로 21세기 월드 스파이스인 고추를.

스파이스 루트라 쓰고 고추 이야기로 읽으면 되겠구먼. 다큐 절반이 고추 이야기다. 하긴 전 세계를 사로잡은 향신료, 음식이니 그럴 자격은 있지. 여기서 놀란 건 청양고추가 맵기로는 하위권이라는 것. 놀랍다. 부트 졸로키아가 이쪽에서 짱먹는데, 청양고추보다 100배 이상 맵다고 한다. 뭐야 이거. 게다가 먹으면 혼이 빠져나간다고 해서 유령 고추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구만. 이런거 강제로 먹였다간 원수 만들기 즉시 시전이다.

매운맛은 통증감각 세포를 자극한다. 혀로 느끼는 맛이 아니기 때문. 이거 고등학교때 혀 그림 나오고 시험 많이 친 거 같은데, 갑자기 생각나네. 여튼 이런 통증에 뇌는 베타 엔돌핀을 분비한다. 이 물질이 주는 좋은 중독성에 빠지면 매운맛을 좋아하고 계속 찾게 된다. 인류가 허락하는 매조키즘 경계선이라고나 할까? 이 정도 고통을 즐기는 건 해롭지 않아.

김치를 비롯해 우리나라 매운 음식을 양인들이 먹으면 매워서 죽으려고 하는 모습만 연상됐는데, 그새 이렇게 많이 바뀌었나? 아님 그때 매운 걸 잘 못 먹는 양인을 수소문해서 섭외했나? 고추가 워낙 많이 퍼져 있다 보니 정말 많은 양인이 먹고 있다. 유럽에는 매운 걸 먹는 역사가 꽤 오래된 나라도 많더라.

향신료로 범위를 좁혀서 이야기하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봤다. 고추! 무서운 놈이구먼! 지구를 접수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