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ic 송곳(2013)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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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같은 책이다. 알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의 부조리, 거기에 맞서 싸우는 사람에 대한 부채 의식을 다시 일깨운다. 노동 운동을 담은 만화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더 잘 알게 해주고 그런 사람이 모이는 조직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한다. 노동 운동에 관심이 없더라도 추천하고 싶다.

교육자로서 귀관에게 공포심을 가르치고 싶었다. 용기만 있고 공포를 모르는 군인은 엉뚱한 전투에서 가치 없이 죽는다. 나는 귀관이 오래 살아남기를 바란다.

여기서 말하는 공포는 무엇일까? 용기만 앞서면 내가 어떤 걸 잃을 수 있다는 걸 잊어버린다. 내가 잃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자각이 여기서 말하는 공포인 것 같다. 사소한 건 눈 감고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 공포심이 정말 소중한 걸 걸고 승부해야할 중요한 일인지를 판단해준다. 그 공포심을 넘어서면 비로소 싸울 준비가 된 것이다.

헤어지고 싶은데 그냥 헤어지자 그러면 나쁜 놈 되니까 이것저것 싸울 핑계 찾잖아요. 집회 때마다 끝까지 싸우겠다고 외쳐놓고 그냥 못 나가거든요. 그냥 나가면 변절하는 거 같고 욕먹을 거 같으니까 꼬투리 잡아서 싸우고 나가는 거에요.

모임의 목적이 가벼우면 모임이 없어질 때는 별다른 갈등이 없다. 하지만 무거울수록 해체할 때쯤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비난이 난무한다. 뭔가를 희생하는 모임이면 분명 끝까지 함께 하자는 말을 수없이 했을 것이다. 나는 그 무게를 더이상 짊어질 수 없어서 나가야 하는데, 그냥 나가려니 입 밖으로 내뱉었던 다짐을 지키지 못하는 내가 못났다. 변절하는 것 같다. 그러니 뭔가 내부에서 원인을 찾아 싸우고 그걸 핑계로 나가고 싶다. 그렇구나. 왜 모임의 목적이 무거울수록 갈등이 많은지. 그 원인 중 하나를 안 것 같다. 인간에 대한 이해. 그런 인간이 모인 조직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높아졌다.

지겹다. 강제된 선택지에 시시한 통찰을 덧칠해서 마치 새로운 답인 양 떠들어대는 어른인 척하는 어른들의 하나마나한 조언들. 그리고 언제나 그 하나마나한 조언이 유일한 정답인 현실.

나 또한 이런 조언을 하는 어른인 척하는 어른이 아니었을까? 대부분 이런 조언은 술을 마시면서 “버텨라” 류다. 말 그대로 쓸데없는 조언. 조언을 받는 사람에게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고 조언하는 사람은 도움이 되는 얘기를 했다고 스스로 뿌듯해하는 그런 조언.

밑줄 그은 문장

  • 프랑스 사회는 노조에 우호적인 것 같은데 저희 회사는 프랑스 회사고 점장도 프랑스인인데 왜 노조를 거부하는 걸까요?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 교육자로서 귀관에게 공포심을 가르치고 싶었다. 용기만 있고 공포를 모르는 군인은 엉뚱한 전투에서 가치 없이 죽는다. 나는 귀관이 오래 살아남기를 바란다.
  • 밥부터 같이 먹어요. 사람들은 옳은 사람 말 안 들어. 좋은 사람 말을 듣지.
  • 당신이 지키는 건 황준철이 아니라 인간이오. 착하고 순수한 인간 말고 비겁하고 구질구질하고 시시한 그냥 인간. 선한 약자를 악한 강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거란 말이오.
  •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거요! 살아 있는 인간은 빼앗기면 화를 내고 맞으면 맞서서 싸웁니다!
  • 조직은 계약서에 적힌 규칙과 통제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일에 대한 책임감, 동료에 대한 연민과 우정, 조직에 대한 소속감, 인간의 선함과 약함에 기댄 관행들을 제거하면 조직은 멈춘다. 합리성을 강요하는 모든 조직은 비합리적 인간성에 기생한다.
  • 차리는 놈 따로, 먹는 놈 따로냐고. 그래서 밥 안 먹을 거요?! 미운 놈 입에 밥 들어가는 꼴 보기 싫다고 굶을 거냐고! 기껏 상 차려놨더니 구경만 하던 놈이 덥석 숟가락 꽂으면 화나죠. 화난다고! 그런데! 미운 놈 권리는 빼고 고운 놈 권리만 지키는 방법은 없어요! 누군가는 밥을 차려야 돼요!
  • 나가실 분들은 나가셔도 됩니다. 탈퇴한 분들은 배신자가 아닙니다. 모두가 같은 무게를 견딜 수는 없습니다. 그분들은 우리와 함께 싸우다 우리보다 먼저 쓰러진 것뿐입니다. 저는 부상당한 동료를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 여기 남으시면 더 고생할 겁니다. 고생한 사람에 대한 보상은 없습니다. 우리가 성공하면 모두가 성공할 것이고 실패하면 아마도 우리만 실패할 겁니다. 그러니까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짐만 지세요.
  • 평시에 합리적인 지휘관만이 위기 시에 불합리한 작전을 관철시킬 수 있습니다. 파업 첫날부터 전원 연행이 뻔한 작전지시를 내리는 지도부를 누가 신뢰하겠습니까?
  • 헤어지고 싶은데 그냥 헤어지자 그러면 나쁜 놈 되니까 이것저것 싸울 핑계 찾잖아요. 집회 때마다 끝까지 싸우겠다고 외쳐놓고 그냥 못 나가거든요. 그냥 나가면 변절하는 거 같고 욕먹을 거 같으니까 꼬투리 잡아서 싸우고 나가는 거에요.
  • 분명 하나쯤 뚫고 나온다. 가장 앞에서 가장 날카로웠다가 가장 먼저 부서져 버리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 지겹다. 강제된 선택지에 시시한 통찰을 덧칠해서 마치 새로운 답인 양 떠들어대는 어른인 척하는 어른들의 하나마나한 조언들. 그리고 언제나 그 하나마나한 조언이 유일한 정답인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