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한번 읽어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이번에 ‘프리젠테이션 젠’을 읽게 됐다. 이론가가 아니라 Career Advice ‘08와 같이 자기가 만든 슬라이드를 통해 충분히 실력을 보여준 사람이라 믿을만하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게 하였다. 사실 이런 발표자료처럼 직접 저자가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건 보여줘야지 책을 읽을 마음이 생긴다.

발표 자료를 만드는 방법은 인지부하 이론(cognitive load theory)을 따르고 있다. 음성과 문장으로 동시에 정보가 제공되면 뇌에서 이를 처리하기가 훨씬 어려워진다는 이론이다. 흔히 발표 자료를 발표자 없이도 읽고 이해할 수 있게 온갖 정보를 빽빽하게 채워놓곤 하는데, 이렇게 만들 바에는 왜 시간 아깝게 발표를 하느냐고 묻고 있다. 글자를 줄이고 한눈에 설명할 수 있는 이미지로 듣는 사람 뇌리에 ‘쾅~’ 메시지를 박자.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면 첨부 자료를 활용해서 발표 자료는 최대한 가볍게 듣는 사람이 발표자가 말하는 내용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저자인 가르 레이놀즈를 이미지를 정말 잘 쓰는데, 이건 계속 훈련이 필요해 보였다. 스티븐 잡스가 멋진 발표를 하고 이런 책이 유행해서 한동안 발표자료에 이미지를 많이 쓰는 게 유행처럼 번졌는데, 내용과 동떨어져서 쓰나 마나 한 이미지를 사용한 발표자료도 많이 보였다. 이미지를 많이 써서 이해를 돕겠다는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동떨어진 이미지를 미친 듯이 많이 쓰는 건 오히려 방해가 된다. 그리고 짤방을 찾는데 시간이 더 많이 걸려서 발표 자료에 넣을 글자를 다듬는데 시간을 못 쓰기도 한다. 적절한 이미지를 찾고 넣는 건 정말 꾸준한 훈련밖에 없어 보인다.

200명의 청중을 앞에 두고 한 시간 동안 쓸데 없고 지겨워 죽을 것 같은 파워포인트 발표를 한다면 그것은 200시간을 낭비한 것과 맞먹는다.

요즘 스터디를 하고 있어서 시간에 대한 얘기가 무척 와 닿았다. 자기 차례인데 발표 자료를 제대로 준비 안 해서 내 시간을 낭비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발표자가 원망스럽다. 시간도 많이 아깝고. 책에 있는 내용을 발표하면 어려워서 준비를 제대로 못 했다면 나도 그럴 때가 있어서 이해가 가는데, 이럴 땐 이해 못한 내용을 얘기하고 빨리 발표를 마치는 게 가장 좋다. 간혹 어렵고 핵심적인 내용은 얼렁뚱땅 넘어가고 쉽고 모두가 아는 내용을 설명하는데 시간을 많이 쓰는데, 이건 정말 최악.

책에서 설명하는 발표 자료와 기술적인 내용을 발표할 때 사용하는 자료와는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 이미지 한 장씩 사용해서 발표할 수 있는 내용도 아니고 발표 자료만 읽고도 설명하는 기술을 대충 훑어 볼 수 있게 만드는 게 기술 발표 자료를 잘 만드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텍스트보단 해당 내용을 한눈에 설명할 수 있는 그래프나 그림을 사용하고 책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한 페이지에 많은 내용을 담지 말고 한 페이지에 하나만 설명해서 페이지를 늘이는 게 좋은 방법.

그리고 항상 똥줄이 탈 때쯤 발표 자료를 만드는데, 이렇게 만들다 보니 연습장에 펜으로 써가면서 구성을 하기가 어렵더라. 메모장이나 워드에 목차를 대충 적고 바로 발표 자료를 만들곤 한다. 똥줄 법칙만 안 따르면 연습장에 직접 펜으로 써가면서 흐름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아날로그 힘을 빌리면 생각도 더 잘나고 전체적인 그림도 쉽게 볼 수 있다고 하니 발표자료를 만들 때 꼭 이렇게 해봐야겠다. 똥줄의 법칙만 없애도 충분히 가능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