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조정래, 1986)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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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난 뒤에 심한 충격을 느꼈다. 안 그래도 역사지식이 어설픈데, 이것도 저거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주입해서 만든거구나. 우리나라는 민족반역자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살고 있는 있을 수 없는 나라였다.

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하면서 한 일은, 일제 치하에서 민족을 배반하던 민족 반역자들의 권력을 회복시켜준 일이었다. 그 민족 반역자들은 숭고한 독립 운동가를 빨갱이로 몰아붙이며 그들이 왜놈들에게 배운 고문법으로 고문해서 죽이고는 했다. 그들은 민족 반역행위를 한 것 자체를 부끄러워 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숭고한 사람들을 해치고는 했다. 더욱더 우스운 일은 이런 말 자체가 몇십 년 전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끌려가서 온갖 고문을 받으며, “너 빨갱이지?” 이런 말을 듣기에 충분한 말이라는 자체다.

해방 후 가장 먼저 해야 했던 것은, 모든 민족반역주의자를 처단하고, 토지 분배가 일어나야 했으며,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그런 체제나 이념을 주장하기에 앞서, 모든 사상을 초월하는 민족을 먼저 생각했어야 했다. 체념하진 않는다. 이 역사의 잘못된 것을 바로 세우는 건 우리의 몫이니깐.

두 강대국의 점령과 함께 두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상황 아래서 누가 가장 바람직한 민족의 지도자였을까.

사회주의 혁명을 앞세운 극좌의 박헌영이었는가.

권력장악만을 앞세운 극우의 이승만이었는가.

좌우 합작을 앞세운 중도적 여운형이었는가.

민족자주를 앞세운 포용적 김구였는가.

두 강대국이 양보 없는 대립을 하는 한 극좌나 극우의 노선은 필연적으로 민족분열을 초래하게 되어 있었다.

이데올로기에 의한 민족의 분열. 그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어리석음이고 비극 아닌가.

아아, 너 같은 친일파놈에게 내가 이런 치욕을 당하다니, 너 같은 민족반역자들이 이 땅에 도대체 몇이냐.

내가 이렇게 견딜 수 없는데,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네놈들한테 이런 꼴을 당한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아,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냐, 이게 무슨 나라냐.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이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이다.

해방이 되자마자 너 같은 놈 하나를 죽이고 나도 죽었더라면 얼마나 의미 있는 죽음이었을 것이냐.

너 같은 종자들이 150만,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150만이라면 이 땅은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냐. 네놈을 죽일 무기만 있다면 네놈을 당장 죽이고 나도 죽고 말겠다.

정말이지 죽고 말겠다.

해방은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 커다란 역사변동의 계기나 전환점인 것이 분명했는데, 미쏘가 강점하지 않고 해방을 맞이했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했을 것이냐 하는 점이요.

사회혁명이나 사회개혁은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것이었소.

그것은 계급적으로 지주제도를 척결하는 것이었고, 민족적으로 친일반민족세력들을 처단하는 것 아니었겠소.

그런 역사적 욕구 앞에서 이데올로기라는 건 그것이 무엇이건 상관이 없소.

그 욕구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이데올로기로 채택되고, 빛을 내게 되어 있소.

그런데 그 욕구가 강대국 점령하에서 중단되고 좌절된 것이 바로 남쪽 땅이오. [.]

미국이 아니었으면 해방이 되고 깨끗하게 처단당했을 자들에게 미국이 국가정치권력을 만들어주고, 무장을 시켜주고 해서 이제 그 반민족세력들이 제놈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오히려 민족을 강제동원해서 제물로 써먹게 되었단 그것이요.

한은 역사전환의 원동력인 것입니다.

그 증거로 갑오년 농민봉기는 동학사상을 불씨로 일어났고, 쏘련과 중국의 혁명성취도 그 불씨만 다를 뿐 같은 맥락으로 파악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한을 단순하기 ’정서’라고 파악하고 정의해 버리는 게 소위 지식인들입니다. 그건 지식인들이 한의 생성과정과 그 본질을 모르고 그저 ’감정적 문제’로만 피상적으로 보기 때문에 저지르는 오륩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오류를 범하는 데는 그들 거의가 지배계급 출신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있는 모든 미군들에게는 적을 증오하게 하는 생각을 고취시키고 있소.

적을 증오하는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해서 먼저 이렇게 가르칩니다.

’아시아인은 미국인과 동등하지 않다. 아시아인은 인간이 아니며, 인간 이하의 존재다.’

“맞아요. 조선놈은 때려야 말을 들어요.”

누가 불쑥 내뱉은 말이었다. 심재모는 허리가 꺾이는 것을 느꼈다.

그건 학병에 끌려가서 일본놈한테 진저리쳐지게 들었던 말이었다.

심재모는 그때서야 좌중의 다섯 명 모두가 일본군 출신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는 강한 반발과 함께 그냥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말씀들을 그리 무책임하게 하십니까.

장병들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하려고 군대에 왔지 구타당하려고 군대에 온 건 아닙니다.

엄연히 군법이 있는데 법대로 통솔하고 다스리면 될 것 아닙니까.

그리고, 인민군에서는 일체의 폭력행위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과연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래도 이게 심각한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까?“

빨치산은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우리나라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은 러시아의 말입니다.

그 말을 우리말로 바꾸면 유격대가 됩니다.

유격대란 간단한 뜻은, 우리 편의 군대를 도와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적의 배후 곧 뒤나, 측면 곧 옆을 쳐서 적진을 어지럽히고 적군을 무찌르는 군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거창양민학살이 마침내 부산의 피난정국에 회오리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국민방위군사건으로 이미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는 정국에 거창양민학사사건은 또 하나의 태풍으로 몰아닥쳤다. 국민방위군산건은, 경찰력을 동원한 강압과 공공기관에 만연된 부패로 이승만 정권에 대해 불신과 불만을 품어왔던 국민들이 일제히 원성을 터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세상을 떠나버린 이덕우 변호사는 좌익도, 공산주의자도, 빨갱이도 아니었다.

그는 양심적인 민족주의자일 뿐이었다.

그는 일제시대부터 농민들의 편에 서서 변호를 했고, 해방이 되자 그 태도는 더욱 확실해졌다.

제주도에서 4.3 사건이 일어나자 그는 광주 고법으로 넘어오는 사람들의 변호를 도 맡다시피 했다.

검찰이 뒤집어씌운 좌익혐의를 벗기기 위한 그의 외로운 싸움은 지칠 줄을 몰랐다.

그는 제주도사람들을 꽤나 죽음에서 건져내기는 했지만, 그가 얻은 것은 좌익.용공 혐의였다.

그는 보도연맹에 강제로 밀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고, 끝내는 예비검속의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나갔던 것이다.

미국이야 애초의 삼팔선 이남을 되찾았으니까 더 피 흘려 싸울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고, 이승만은 자기가 국부라고 자처하는 것처럼 미국의 힘을 빌려 한쪽만의 국부가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국부가 되어보겠다는 엉뚱한 꿈을 꾸고 있는 것 아니겠소.

허나, 그건 작전권을 넘겨버린 것과 똑같은 또 하나의 노망일뿐이오.

작전권을 넘겨주들 말든지, 작전권이 없으면 휴전을 결사반대하질 말든지 해야 제정신이 있는 짓일 텐데, 그 앞뒤가 안 맞는 짓을 하고 있으니 노망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김범우는 포로 수용소 전체의 구도를 보면서 새롭게 치솟는 분노를 느꼈다.

우리의 땅에 미군들이 미국제의 철조망을 치고, 그 안에 우리 민족을 15만 명이나 가두어놓고, 미국의 무기로 경비를 하는데, 국군이 거기에 경비병으로 동원되어 있는 것이 포로수용소라는 곳이었다. 그 기막힌 꼴에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전제되고, 작전권 이양이라는 것이 첨가되면서 민족의 해체가 이루어짐과 동시에 그 참담한 민족의 수난과 모멸은 묵살되어 버리고, 미군의 행위가 오히려 정당화되고 합리화되고 있었다.

그런 포로 수용소는 거제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제도의 것이 규모가 제일 클 뿐, 수용소는 부산에도, 광주에도, 논산에도, 영천에도, 마산에도 있었다.

태백산맥 세트, 해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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