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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보하고 있는가? 나쁜 뉴스가 세상을 뒤덮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더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 영화, 드라마, 게임 등에서 폭력은 왜 빠지지 않고 항상 등장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스티븐 핑거의 대답을 들어보자.

진보(progress)는 무엇일까? 스티븐 핑거는 인류가 번성하면 진보했다고 정의한다. 수명, 건강, 생계, 부, 평화, 자유, 안전, 지식, 여가, 행복이 향상됐다면 인류는 진보한 것이다.

데이터로 확인해도 우리는 진보했다. 1770년에 30세였던 기대 수명이 현재는 72세가 넘는다. 산업혁명 이후 급속히 발달해서 세계 총생산이 늘었다. 극빈층이 90%에서 9%로 줄었다. 대부분의 인류사에서 전쟁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애석하게도 평화는 전쟁 사이에 짧은 휴식에 불과했다. 전사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지금이 역사상 전사자가 가장 적은 시기다.

희망적인 얘기는 데이터보다는 감정에 호소하지 않나?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데이터를 근거로 진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희망적인 얘기의 근거가 데이터라니 낯설다.

진보가 있었다고 치자. 우리는 여기에 안주하면 안 된다. 우리는 더 진보해야 한다. 지금까지 있었던 진보를 부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건 생각도 못 해봤던 질문이다. 지금까지 있었던 진보를 부정하면 안 된다. 세상을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방해가 돼서 다음 진보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진보가 모든 게 항상 나아지기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항상 나아지는 건 진보가 아니라 기적이다. 지식을 사용해 문제를 해결하고 진보해 왔다. 코로나19를 진보 관점에서 본다면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는 항상 있었다. 코로나19가 진보를 잠시 막기는 했다. 기대수명을 잠깐이지만 급격하게 낮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과 과학이 맞서 싸웠다. 천연두 백신을 만드는 데 300년이 걸렸고 에이즈는 13년이 걸렸다. 반면 코로나19 백신은 4개월 만에 백신을 만드는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진보는 자연계가 아니다.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지식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성, 과학, 휴머니즘에 전념하면 진보는 계속될 수 있다. 비록 진보가 완벽하지 않아서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이것 때문에 진보를 부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진보는 실재하는 현상이고 증명하는 데이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뉴스는 우리가 진보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지 않는다. 세상이 나아지는지 보려면 과거와 비교해야 하기 때문이다. 뉴스는 최근에 일어난 일에 집중한다. 게다가 나쁜 사건을 보도하는 데 집중한다. 좋은 현상이 유지되는 건 뉴스가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부정 편향(negativity bias)과 가용성 편향(availability bias)이 나쁜 뉴스와 만나 세상이 더욱더 나빠지는 것으로 인식한다. 언론에서는 더 많은 데이터를 사용해서 보도해야 한다. 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범죄율이 증가하는 중인지 감소 중인지도 같이 알려주고 전체적인 동향에 더욱더 집중해야 한다.

폭력에 대한 설명이 최고다. 우리는 왜 폭력에 끌리는가? 두루뭉술했던 문장이 설명을 듣고 명료해졌다.

인류 진화 역사에 폭력이 항상 있었다. 폭력을 방어하고 반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기 때문이다. 생존이 걸렸기 때문에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폭력에 이끌린다. 진보의 결과로 범죄율이 줄어들었지만 인간의 뇌가 폭력에 이끌리는 건 그대로이다. 폭력이 거대한 오락 산업이 된다. 그래서 게임, 영화, 책과 같은 우리가 즐기는 콘텐츠에서 폭력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