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파트 2 (드니 빌뇌브, 2024) 감상문 - 종교공학은 붙여써야 한다 합성어니깐
폴 아트레이데스는 퀴사츠 헤더락으로 각성하고 복수를 마친다. 복수를 마친다는 건 결국 우주 전쟁의 시작인 것 같다. 복수의 대상에 황제도 있기 때문이다.
사전 작업으로 종교를 퍼트려놨다. 이후에 만들어 낼 퀴사츠 헤더락의 세력을 손쉽게 만들기 위해서다. 폴이 퀴사츠 헤더락이 될 거란 거에 꽂혀 버린 장로의 행동이 달라진다. 광신도가 될 준비를 마쳐놨는데, 구원해 줄 퀴사츠 헤더락이 등장한 것이다. 종교공학이라는 용어가 잘 어울린다. 폴의 작은 행동에서조차 의미를 찾아내는 모습이 웃기다. 하지만 광신도는 진지하다.
모든 걸 집어삼키는 모래벌레가 콜택시로 전락해 버린다. 땅을 두드리면 모래벌레가 온다. 콜택시처럼 올라탄다.
프레멘 숫자가 예상보다 많다. 사막이라 살기 힘든 곳일 텐데, 우리나라 출산율보다는 더 높은가보다.
듄은 종교와 믿음에 관한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운드가 좋은 영화관에서 봤다. 소리는 진동이 맞다. 웅장한 사운드에 의자와 몸이 진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