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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제목에 있는 실천윤리학(Practical Ethics)에 대해 명쾌한 정의를 내려주지는 않는다. 바탕이 되는 공리주의, 효율적인 이타주의, 동물 해방에 관해 설명한다. 수업을 듣는 똑똑한 학생은 이걸 바탕으로 실천윤리학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이고 나처럼 실천윤리학이란 걸 접해봤으니 이걸로 됐다는 학생은 들은 걸 바탕으로 정리하고 마무리할 것이다.

실천윤리학의 이론적인 바탕이 되는 공리주의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도덕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목적으로 한다’는 삭막한 느낌의 윤리적 사상이다. 공리주의는 현실적인 철학이며 긴급한 상황에서도 유용한 기준을 제공하는 잘 만든 모델이란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면 팬데믹 상황에서 명확한 판단의 잣대를 제공한다. 환자들은 많고 중환자실은 모자란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공리주의는 생존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살리는 현실적인 기준을 제공한다.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 가장 효율적인 윤리적 사상이다. 다수를 위해 내가 희생해야 하는 상황만 아니라면 모두가 행복할 것이다.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힘든데, 한 발 더 나간다. 이타적인 행동을 할 때 자원의 효율적인 사용을 추구한다. 효율적 이타주의다. 후원으로 끝내지 않고 모은 자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 감시까지 해야 한다. 시각 장애인의 안내견을 훈련하는데 큰 비용이 든다. 만약 이 돈을 다른 곳에 쓴다면? 저소득 국가에 이 비용을 투자하면 실명이 될 수 있는 질병을 막을 수 있는 비용이다. 공리주의에 자본을 결합한 것 같다. 이왕이면 자선 단체에 후원할 때, 더 많은 사람을 살리거나 도울 수 있는 실질적인 기준으로 선택하라. 도움을 주는 나라, 도움을 받는 사람과의 물리적인 거리를 떠나 인류를 향한 효율적인 자원 분배라니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나라의 시각 장애인 안내견을 훈련하는데 후원할 것 같기 때문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일원이라서 다른 종들이 누리지 못하는 권리를 누릴 수 있는가? 다른 종도 도덕적인 권리를 가진다면 어떤 기준에 의해서인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로 나눠야 한다. 동물 해방 편에 나오는 이 기준을 들었을 때, 놀랐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 기준이 아니다. 고통이라니. 행복 최대화, 고통 최소화를 인간에게만 적용하지 않는다. 생명체라면 누릴 수 있는 권리로 생각한다. 동물 해방은 동물 착취를 중지하자는 운동이다.

행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까다로운 행복은 자신을 갈구하며 목표로 하는 사람에게는 다가가지 않는다. 무심하게 뭔가를 즐기면 불현듯 찾아온다는 ’쾌락주의의 역설’에 대한 설명을 끝으로 강의를 마친다.

’쾌락주의의 역설’이란 게 있습니다.

쾌락주의의 역설이란 직접적으로 쾌락을 얻으려 한다면 가령 행복을 위해 물건을 사며 직접적으로 쾌락을 얻으려 한다면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겁니다. 타인을 행복하게 한다거나 자신의 기술을 갈고닦는다거나 혹은 게임을 할 때 쾌락이 아니라 게임 자체를 즐긴다면 여러분이 행복을 얻을 가능성은 더 높아집니다.

따라서 행복이 목표라고 해도 직접적으로 행복을 얻으려 하지는 않는 게 좋을 겁니다.

  • 피터 싱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