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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모든 게 담겼다. 던전에서 밥을 먹는 얘기다. 식재료를 가져오지 않는다. 현지에서 공수한다. 마물이라고 다를 거 없다. 미궁에도 생태계가 있고 서로 먹고 먹힌다. 미궁의 주인, 인간의 욕망을 먹는 날개 사자도 나오지만 밥을 먹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없다.

한때는 그렇게나 무서워했던 대상이 이렇게 약하고 맛있는 마물이었다니 - 라이오스

던전이 깊다면 며칠씩, 아니 한 달을 가까이 탐험할 텐데 먹는 건 어떻게 해결할까? 다들 탐험에 집중하려고 생략한 던전에서 먹는 밥에 집중했다. 돈이 없어서 다른 모험가들처럼 마을에서 음식 재료를 사지도 못한다. 사냥한 마물을 요리해서 먹는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요리한다.

마법이나 기계가 아닌 유기체로 풀어내는 작가의 상상력이 재미있다. 유기체로 푸는 이유는 간단하다. 먹을 수 있으니깐. 움직이는 갑옷을 조개로 풀어냈고 클리너라는 생물이 던전의 부서진 벽을 복구한다. 다 먹자고 하는 짓이다.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어 웃기는 세련된 유머가 내 취향이다. 무리하지 않고 과하지 않다. 몇 가지 장면이 기억난다. 개구리가 독이 있는 식물 근처에 살고 있는 걸 본다. 개구리로 옷을 만들어서 입고 무사히 통과한다. 무표정한 표정으로 개구리복을 입은 상황을 보여준다. 석화가 걸리는 마물에게 물린다. 라이오스가 자세를 지시한다. 그걸 그대로 따라하다가 이게 석화를 푸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듣고 놀란다. 석화돼도 부서지지 않게 안전한 자세로 굳게 하려고 했는데, 놀라는 바람에 아주 위태로운 놀란 자세로 석화가 된다. 피닉스를 요리해 먹는다. 언제 다시 시체가 불타면서 부활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다. 황금향 사람들을 해치지 못하는 규칙을 기억해낸다. 시체처럼 보이는 그 사람을 업은 상태로 같은 의자에 앉아서 요리한 피닉스를 먹는다.

밟으면 근친종으로 바뀌는 버섯이 있다. 택도 없는 종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그리핀을 하포그리핀 정도로 근친종으로 바꾼다. 톨맨, 하프풋, 엘프, 드워프와 같은 인종이 있다. 근친종으로 바뀌는 버섯을 밟아서 서로 인종이 바뀌는 장면을 만든다. 바뀐 인종으로 퍼즐을 풀며 내려가야 한다. 서로 자기 인종의 특징을 말해주며 행동을 지시한다. 정보 전달이 자연스럽다. 독자가 톨맨, 하프풋, 엘프, 드워프에 대한 지식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된다.

죽인 생물을 자기 것으로 삼기 위해 먹는다. 다른 생물에게 소화된 고기는 자아를 잃는다. 삶과 죽음이 애매한 던전에서 유일하게 명확한 법칙.

돈이 없어서 마물을 요리해 먹으며 여동생을 구하러 갔는데 점점 먹는 것에 대한 심오한 얘기가 나온다. 욕망까지 먹으니 말이다. 메인 스토리가 나쁘지 않았다. ’심야식당 (MBS, 2009)’처럼 계속 요리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마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그려내고 요리하는 작가의 상상력을 즐겁게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