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의 이해 (스콧 맥클라우드, 2008) 독후감
만화에 대해 쥐뿔도 모른다. 만화 얘기가 나오면 조용히 추천하는 만화들을 메모했다가 찾아서 읽는 정도. 기껏 읽었두만 다음에 만나면 그 만화에 대한 얘기를 안 한다. 좋아하는 만화가는 아다치 미쓰루. 이 작가가 쓴 건 다 챙겨서 보지만 다른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었다고 얘기하는 만화는 거의 다 안 본 것들이다. 아무튼 쥐뿔도 모르는 상태. 많이 보지도 않았고.
만화는 쥐뿔도 모르지만 만화에 쓰이는 드로잉에 관한 책이 아니라 만화라는 미디어 자체를 얘기하는 책이라서 호기심에 읽었다. 대만족. 만화라는 미디어 자체에 대한 활발한 토론을 이끌어 내고자 이 책을 펴냈다고 얘기하는데, 미디어 쪽 지식이 없어서 반박할 꺼리가 없더라. 보는 내내 ’아~ 그렇구나.’를 연발하며 지지자처럼 책을 읽었다.
만화에 많이 쓰이는 카툰화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개성있는 그림을 위해 자세히 묘사를 하면 그리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깐 카툰화를 쓰지 않을까 라고 예전엔 생각했는데, 몰입감으로 카툰화를 설명한다. 우리 자신을 보지 못하니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생각할 때, 모양과 배치를 대강 그리게 된다. 이 때문에 사실적으로 묘사를 하면 남처럼 보이는 반면 카툰화를 쓰면 자기 자신으로 보인다고 한다. TV 앞에 빨려들어갈 듯이 넋 놓고 보는 애기들, 어느덧 화면에 보이는 카툰을 자기 자신으로 보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눈 나빠지니깐 뒤에서 봐라고 해야지.
만화에서 의미없이 벌려 놓은 칸과 칸 사이를 설명한 것도 흥미롭다. 사실 카툰화에서 추구하는 몰입감은 게임을 따라오지 못한다. 하지만 만화에 있는 칸과 칸 사이가 하는 일은 다른 매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칸 안에서 전달하는 정보는 모두 시각 정보. 칸과 칸 사이에는 어떤 감각도 필요하지 않아 오히려 우리가 가진 모든 감각이 개입하게 된다고 설명하는데, 이거 정말 그럴듯하다. 아니 그런 것 같다. 이건 생각도 안 해봤는데, 새로운 시각과 정보를 얻은 것 같아 뿌듯.
재미이론이 생각났다. 자신이 만들어 내는 콘텐츠 자체를 깊이 이해하려는 시도. 정말 힘든 일이지만 소비가 아니라 생산하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철학이라고 할 수도 있는 콘텐츠 자체를 정의하려는 시도는 반드시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재미있으면 됐지 뭐!” 이렇게 끝나도 상관없지만 생산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끝나선 곤란하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앞에서 얘기했듯이 정의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런 면에서 존경스럽기도 하다.
TED에서 발표도 했다. 자신이 쓴 책들을 요약해서 알려주는 발표. 너무 재미있게 봐서 스콧 맥클라우드가 지은 시리즈라고 할 수도 있는 다른 책들도 읽을 예정이다.